영국 AI 저작권 옵트아웃 정책 철회: 창작자 반발이 정책을 되돌린 경위
영국 정부의 AI 학습데이터 저작권 옵트아웃 원안이 창작자 커뮤니티의 반발로 철회된 배경과 EU·미국·일본 등 각국 정책 비교,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정리한다
2026-08-14 · 최초 발행 2026-03-19
2024년 말부터 2025년 초에 걸쳐 영국 정부는 AI 학습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저작권 정책을 놓고 창작자 커뮤니티와 AI 산업계 사이에서 격렬한 충돌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AI 기업이 저작물을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권리자가 원하면 옵트아웃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했으나, 음악인·작가·시각 예술가 등 광범위한 창작자 집단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면서 원안을 사실상 철회하는 수순을 밟았다. 이 사건은 AI 시대의 저작권 거버넌스가 단순한 기술 정책이 아닌 산업 구조와 문화 생태계 전반을 좌우하는 핵심 의제임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원안이 담았던 것
정책 명칭은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TDM) 저작권 예외 확대 방안이고, 주무 부처는 영국 지식재산청(IPO, Intellectual Property Office)이었다. 핵심 내용은 AI 기업이 상업적 목적의 모델 학습을 위해 저작물을 크롤링·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권리자가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힐 경우 해당 저작물을 학습에서 제외하는 옵트아웃 조항을 두는 것이었다. 기존 영국 저작권법은 비상업적·연구 목적에 한해 TDM을 허용했는데, 원안은 이를 상업적 사용까지 확장하려 했다. 대상 저작물은 텍스트·이미지·음악·영상·코드 등 디지털 형태로 접근 가능한 모든 저작물이었고, 정책 추진 배경에는 영국 AI 산업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AI 허브 도약이라는 목표가 있었다. 2024년 중반~후반에 걸쳐 공개 협의(consultation)가 진행됐다.
왜 철회 수순을 밟았나
작가·음악인·시각 예술가·저널리스트 등 수천 명이 연대 서한을 보내며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AI 기업이 어떤 저작물을 얼마나 학습에 활용했는지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투명성 부재가 근본 결함으로 지적됐고, 권리자가 옵트아웃 의사를 표명해도 이미 학습에 사용된 데이터를 소급 삭제할 방법이 없다는 옵트아웃 실효성 논란도 컸다. 대형 AI 기업과 개인 창작자 간 협상력 격차가 너무 커 옵트아웃 제도가 실질적 보호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불균형 협상력 문제도 제기됐다. 영국 하원 문화·미디어·스포츠 위원회(DCMS Select Committee)가 정부 방안에 비판적 보고서를 제출했고, 미국·유럽·호주 등 해외 창작자 단체까지 영국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결국 2025년 초 영국 정부는 원안대로 추진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고, 이후 창작자·AI 산업계·정부 3자 대화 채널을 구성해 새로운 합의 도출을 시도하고 있다.
음악·문학·시각예술·저널리즘, 나란히 선 반발
음악 산업에서는 Paul McCartney, Elton John 등 저명 뮤지션을 포함해 1,000명 이상이 공개 청원에 서명했다. 문학계에서는 영국 작가 협회(Society of Authors)가 옵트아웃 방식을 전면 거부하고 옵트인 방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시각 예술 분야에서는 영국 삽화가 협회(AOI) 등 단체가 AI 이미지 생성 모델이 작가 스타일을 무단 모방한다고 주장했다. 저널리즘에서는 NUJ(전국 언론인 조합)가 언론사 콘텐츠의 무단 학습이 저널리즘 생태계 붕괴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핵심 반론 논점은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창작물 생성 시점에 AI 학습 허용에 동의한 적 없다는 동의 없는 사용, 학습 기여에 대한 경제적 보상 체계가 전무하다는 보상 부재, AI가 생성한 콘텐츠가 원작자의 시장을 직접 잠식한다는 대체 효과, 보호받으려면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명해야 하는 옵트아웃 부담 전가, 글로벌 AI 기업이 옵트아웃을 실제로 준수하는지 검증할 수단이 미비하다는 집행 불가능성이다.
AI 기업들이 요구한 것
AI 기업들은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한 데이터 활용은 정당한 행위이며 AI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입장이었다. 지나친 규제가 영국 AI 산업 경쟁력을 미국·중국 대비 약화시킬 것이라는 경제적 논리를 폈고, AI 학습은 인간이 책을 읽고 배우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공정 이용 유사 논리도 강조했다. 일부 대형 기업은 권리자와 개별 라이선스 계약을 협상할 의향을 표명했지만, 대형 기업만 라이선스 비용을 부담할 수 있어 진입 장벽이 높아진다는 스타트업 쪽의 반론도 있었다. 산업계는 법적 불확실성 해소, 명확한 TDM 허용 범위 설정, 과도한 옵트아웃 행정 부담 제거를 요구했다.
협의부터 철회까지
2024년 상반기 IPO가 TDM 저작권 예외 확대 옵트아웃 방안 공개 협의를 개시했고, 중반에는 창작자 단체들의 조직적 반대 운동이 본격화되며 공개 서한이 발송됐다. 하반기에는 하원 DCMS 위원회가 정부안 비판 보고서를 발표했다. 2024년 말 정부가 원안 재검토 착수를 발표했고, 2025년 초 원안대로의 정책 추진을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2025년 이후로는 창작자·AI 기업·정부 3자 협의체를 구성해 대안 정책을 논의하는 중이다.
EU AI Act와 나란히 놓고 보면
EU AI Act의 TDM 조항은 저작권자가 머신러닝 목적의 TDM을 명시적으로 금지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EU는 옵트아웃 권리를 권리자에게 부여하되 이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규정하며, EU 기반 논의에서는 robots.txt 파일을 통한 크롤링 거부를 저작권 옵트아웃의 기술적 수단으로 인정한다. 영국과의 차이점은 EU가 옵트아웃 권리를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한 반면 영국 원안은 옵트아웃 방법론과 집행 체계가 불명확했다는 점이다. EU AI Act는 AI 시스템 학습에 사용된 데이터 출처 공개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됐고, AI 생성물이 기존 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을 경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틀도 마련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EU 규범과 다른 방향을 택할 경우 유럽 내 AI 서비스 운영의 복잡성이 커질 수 있다.
| 항목 | EU AI Act | 영국 원안 | 영국 현재(철회 후) |
|---|---|---|---|
| TDM 상업적 허용 | 조건부 허용 | 광범위 허용(시도) | 불명확 |
| 옵트아웃 권리 | 법적 명시 | 포함(실효성 논란) | 재논의 중 |
| 투명성 의무 | 강화 | 부재 | 미결 |
| 창작자 보상 | 논의 중 | 미포함 | 미결 |
미국·일본·중국·캐나다는 어떻게 하고 있나
미국은 저작권청이 2024년 AI와 저작권에 관한 단계적 보고서를 발표해 AI 학습의 공정 이용 해당 여부를 사안별로 판단하고 있다. 입법 대신 Getty Images vs Stability AI, New York Times vs OpenAI 등 민사 소송으로 사실상 규범이 형성되는 중이고, 의회 청문회는 다수 열렸지만 연방 법률 제정까지는 미진하다. 공정 이용 4요소 테스트는 AI 학습이 변형적 사용인지, 시장 대체 효과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일본은 가장 친AI적인 정책을 편다. 2019년 저작권법 개정으로 비상업·상업 모두 TDM 허용 범위를 대폭 확대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지만, AI 생성물의 저작물 대체 문제가 부각되며 일본 내에서도 재논의가 시작됐다.
중국은 2023년 생성형 AI 서비스 관리 잠정 방법을 시행해 AI 학습 데이터의 합법적 출처 확보 의무를 부과했으나, 규정과 실제 운용 간 괴리가 있고 대형 국내 기업 중심으로 정책이 설계돼 있다.
캐나다는 AI와 저작권 관련 법 개정 논의를 진행 중이며, 혁신 장려와 창작자 보호의 균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한국은 현재 비영리 연구 목적의 TDM에 한해 제한적 예외를 인정하고, 인간 창작성이 없는 순수 AI 생성물은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저작권위원회를 중심으로 AI 저작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단계이며, 아직 AI 학습 관련 주요 국내 저작권 소송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
영국 사례는 몇 가지 교훈을 남긴다. 옵트아웃만으로는 창작자 보호 수단으로 불충분하다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하고, AI 기업의 학습 데이터 출처 공개 의무를 정책 초기부터 핵심 요건으로 설정하는 투명성 선제 확보가 필요하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 창작자 커뮤니티를 실질적 이해관계자로 포함하는 창작자 참여 보장, 어느 한쪽을 희생하면 사회적 저항에 직면한다는 산업 진흥과 문화 생태계 보호의 균형, EU AI Act 등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을 고려해 불필요한 규제 격차를 막는 국제 정합성, 일괄 규정 도입보다 파일럿 프로그램·조건부 허용 같은 단계적 접근, 창작자에게 학습 기여에 상응하는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마련하는 보상 체계 선제 설계도 함께 꼽힌다.
정책 권고 방향으로는 창작자가 명시적으로 동의한 저작물만 AI 학습에 활용하고 집단 라이선스 플랫폼으로 보상을 효율화하는 옵트인 원칙과 라이선스 플랫폼, AI 기업이 사용한 학습 데이터셋의 출처·범위를 정기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의무적 공시 제도, AI 기업 매출의 일정 비율을 창작자 지원 기금으로 적립하는 창작자 기금, AI 저작권 분쟁을 신속 처리하는 전문 조정 기구가 제시된다.
영국의 AI 저작권 옵트아웃 정책 철회는 기술 혁신과 문화 창작 생태계 보호 사이의 긴장이 결코 쉽게 해소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단순히 '옵트아웃을 허용한다'는 조항 하나로는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저작권 규범과 창작자의 생계를 보호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앞으로 각국이 AI 저작권 정책을 설계할 때는 투명성, 실효적 보상, 창작자 참여라는 세 축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며, 한국 역시 영국의 실패에서 배워 보다 균형 잡힌 거버넌스 모델을 선제적으로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
Sources
- https://www.gov.uk/government/consultations/ai-and-ip-consultation
- https://www.societyofauthors.org/News/News/2024/AI-copyright-opt-out
- https://publications.parliament.uk/pa/cm5804/cmselect/cmcumeds/ai-copyright
- https://www.ipo.gov.uk/ai-and-intellectual-property
- https://artificialintelligenceact.eu/article/53/
-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ai-copyright-uk
- https://www.musicweek.com/business/read/uk-ai-copyright-consultation/
- https://www.bbc.com/news/technology/ai-copyright-artists
- https://www.wipo.int/wipo_magazine/en/2024/ai-copyright
- https://www.copyright.gov/ai/